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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키우는 건 동경과 로망 … 돈키호테가 되어라”

글쓴이    관리자     날짜 2009-09-30

마스카와 도시히데 노벨 물리학 수상자


"젊은이들이 위대한 과학자를 동경하고 돈키호테처럼 좌충우돌하면서 자신의 로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라."

200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가 노벨 과학상을 꿈꾸는 한국 사회에 던진 조언이다. 그는 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 볼룸에서 '한국은 언제 노벨과학상을 받을 것인가'란 주제의 유민기념강연회에 연사로 참여했다. 마스카와 교수는 원고 없이 50분동안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다음은 강연 전문.

먼저 제가 어떻게 태어나서 자랐는지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설탕가게 아들입니다. 1940년에 나고야에서 태어났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바로 전 해입니다. 아버지는 원래 오사카에서 가구 만드는 회사에 다녔습니다. 아버지는 사실 가구 기술자가 아니라 전기 기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통신 교육을 받으면서 공부를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등소학교(당시 6년제 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통신 교육에 나오는 사인·코사인이 나오는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을 제대로 이해 못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기 기사의 꿈을 포기하고 가구 만드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4~5명과 함께 작은 가구 공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2차 대전 때 공장은 완전히 불에 타버렸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후에도 가구 공장을 재건할 수가 없었습니다. 문짝이나 나사 같은 남은 부품들을 모아 팔았지만 패전 직후 아무것도 없이 황폐화 된 상황에서는 그런 것도 잘 팔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물건을 팔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장사꾼으로 직업을 바꾼 것이죠.

패전 직후에는 대부분 작은 집에 많은 식구가 모여 살았습니다. 집안에는 목욕탕이 없어서 공동 목욕탕에 갔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저와 함께 공중 목욕탕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지식을 자랑할만한 상대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바로 저였죠! 아버지는 별로 교육적인 목적에서 자신이 배웠던 과학 지식을 알려준 건 아니었습니다. 자랑이 하고 싶으셨던 거죠.(웃음) 교류 모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일식과 월식은 왜 매달 일어나지 않는지 이런 것들 말입니다. 전 그게 재미있었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평면적으로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면 정말 일식과 월식이 매달 일어나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달과 지구의 공전면이 15도 차이 나기 때문에 매번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것들만 잘 알고 있는 이상한 아이가 됐습니다. (웃음)

저희 집은 장사를 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숙제를 하라고 챙길 정도로 여유가 있는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숙제는 전~혀 안 했습니다.(웃음) 어느 날 어머니께서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가 집에서 공부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느끼셨던 겁니다. 학교를 찾아가셨죠. 선생님께 "우리 아이는 집에서 자기가 따로 공부를 안 하니 숙제를 안 내주면 곤란하다"고 말씀을 드린 겁니다. 선생님께서는 "매일 숙제는 내고 있는데 댁의 자녀가 숙제를 안 할 뿐입니다"고 답하셨구요. 그날 저는 매우 크게 혼났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다음날부터 숙제를 하는 착한 아이는 아니고(웃음) 계속 놀기만 했습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렸듯 아버지가 좀 이상한 과학의 지식을 가르쳐 줬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수업 내용과 좀 관련이 없는 내용에 관해 "이걸 아느냐"고 물어보시면 관심을 갖는 특이한 아이였습니다.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을 비롯해 국내 과학자, 젊은 과학도들이 마스카와 교수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사진 앞줄 오른쪽부터 문창극 중앙일보 대기자, 이홍구 유민문화재단 이사장, 홍 회장, 송자 전 연세대 총장(현 대교 고문). [신인섭 기자]

또 한가지 중요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쯤 됐을 때 그룹학습이 있었습니다. 4~5명씩 조를 만들어서 각 조에 한 가지 주제를 주면 조원들끼리 함께 조사하고 집단 발표도 했죠. 그런 공부 방식이 도입된 시기였습니다.

우리 조는 '여행을 할 때 숙소는 어떻게 하는지'가 주제였는데 나고야 시립 도서관에 가서 조사를 하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수준의 과제였으니까 조금만 조사하면 금방 답이 나왔죠. 그래서 시간이 남아 도서관을 돌아다니니 책이 아주 많았습니다. 제 손으로 책을 뽑아서 보는 첫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당시 어떤 책을 골랐는지는 기억 못 하지만 소름이 끼칠 정도로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부터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공부하기 위해서 도서관에 간 것은 아닙니다. 설탕가게 아들이다 보니까 배달 심부름 같은 걸 어른들이 시키십니다. 그걸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조사하러 도서관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죠. 『15소년 표류기』 같은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도서관에서 보낸 시간 중 3분의 1 내지 4분의 1 정도는 공부가 되는 책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때부터 책은 나의 아주 소중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중 3때 졸업문집을 만듭니다. 친구들은 자신의 장래 희망을 써서 냈죠. 저는 모범생이 아니었기 때문에(웃음)당시 제가 읽고 있던 『별의 진화』라는 책의 요약문을 냈습니다. 저만 문집 성격에 맞지 않는 글을 실은 거죠.

제가 어릴 때는 중학교까지가 의무교육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는 50% 정도만 진학했습니다. 제 친구들이 다 고등학교에 간다고 했기 때문에 저도 가고 싶었습니다. 마음은 그랬지
만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중요한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나고야 대학의 사카타 소이치 선생님이 소립자에 대한 ‘사카타 모델’을 발표했다는 기사가 지역 신문에 실렸습니다. 저는 아주 인식이 뒤처져 있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때까지 과학은 유럽에서 19세기까지 다 만들어진 줄 알았습니다. 중학교 교과서에는 19세기 것밖에 실려있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일본의 지방도시인 나고야에서 과학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여기 참여하고 싶다, 그런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고3 때입니다. 아버지가 가업인 설탕가게를 이어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고도성장기였는데 대기업이 노동력을 모두 흡수해서 영세기업에서 일하는 젊은이는 별로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선 당신 눈 앞에 있는 꼬마가 바로 노동력으로 생각된 것이죠.(웃음) 나는 싫다고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도 기술자 출신이라 장사에 능하진 못했죠. 시멘트 봉지만한 크기에 설탕 30kg씩을 팔았는데 봉지당 25원 정도 남겼습니다. 저는 마진을 붙여 파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장사가 맞지 않는 체질이었던 것이죠. "가업을 이어라" "잇지 않겠다""이어라""싫다" 그렇게 아버지와 다퉜습니다. 어머니께서 중재를 하셨었는지 타협안이 나왔는데 딱 한번 대학 입시를 보게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실패하면 가업을 이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고3, 1년 동안 아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평생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것은 그때뿐이었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소립자 이론을 만들 때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웃음)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서 처음 들은 수업은 해석학이었습니다. 하야시 교수라는 분이셨는데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엄청난 고등수학을 가르치셨죠. 주변 수학자들에게 물어보니 50년이 지난 지금도 어려운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 걸 접하니 '뭐냐, 이건! 정말 대단하다. 대학이라는 건 정말 대단해' 많이 흥분하고 흥미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복소수를 더욱 확장시킨 수로 해석 역학을 만들 수 있느냐! 뭐 이런 생각을 펼쳐보기도 했는데요. 처음 접한 친구들에게 나는 이런 어려운 것도 알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었거든요(웃음). 그런데 그런 것은 할 수 없다고 선생님께서 가볍게 얘기하시더군요. (웃음)

그 다음 수업은 지금도 생생한데. (A4 용지를 들어보이며)이런 종이에 여섯개의 수학 문제가 써 있더라구요. 대학 입학하자마자 두 번째 강의인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런데도 다음 시간까지 풀어오라더군요. 이런 일이 반복되자 수학과 물리를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모이게 됐습니다. 서로 모여서 함께 얘기하고 공부하면서 지식을 많이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선생님께 여쭤보면 정확한 대답을 편하게 얻을 수 있었겠지만 그 틀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겠죠. 하지만 친구들하고 토론하고 고민하면 방향이 이리 튀고 저리 튀면서 인식의 폭이 넓어집니다.

아, 저 친구는 나보다 앞선 공부를 하고 있네, 하고 집에 가서 또 열심히 공부해보고… 알아보고…그렇게 공부하게 됩니다. 동급생끼리 서로 자극하는 것은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한다고 봅니다. 그런 생활을 통해 여러 지식을 흡수해 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동료가 아직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고 그들과 지금도 계속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젊은이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건 같은 수준 정도의 젊은이들과 24시간 계속되는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토의를 해봐서 친구가 더 앞서고 있다면 그걸 넘어서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됩니다. 친구들끼리 논의하면 방향이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어디로 갈 지 알 수 없죠. 그런 지식이 점점 넓어져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겁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고바야시-마츠카와 이론' 논문은 제가 일본어로 써서 저는 영어를 못하니까 고바야시 교수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고바야시 교수가 그 내용을 번역을 한 것이 아니라 필요없는 부분을 절반 정도는 들어내고(웃음) 논문이 완성됐습니다. 기껏해야 걸린 시간은 구상에 한 달, 작성에 한 달이 전부입니다. 물리학에는 저 자신도 그렇습니다만 하루에 세 시간씩만 자고 한 달 동안 계속해서 한 문제를 생각해서 논문을 쓰는 경우도 있고, 쭉 논의는 계속해오다가 쓰는 데만 한 달 정도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생각하고 작성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반드시 그런 경우가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세상일은 그런 것인가 봅니다.

지금 저한테 메모가 하나 왔네요.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웃음)
물리가 재미있다, 해볼까 하고 만드는 계기는 동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든 대단한 과학자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동경하고 그 사람이 한 업적을 동경하는 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단계는 '로망'이라고 저는 얘기합니다. 돈키호테를 예로 드는데, 돈키호테는 말 타고 모자 쓰고 기사 흉내를 내죠. 이것이 연구자의 시작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는 없습니다. 돈키호테가 말을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과학자들도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조금씩 제대로 된 연구자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먼저, 동경이 있고 그 다음에 로망을 실현하면서 연구자가 되는 겁니다. 사회가 동경심과 로망을 주는 것이 제대로 된 연구자를 양성하는 하나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연구자를 양성하는 길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죠.

한국에 대해서 조언을 부탁하신다면 감히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일본은 전쟁에 지고 자원이 거의 없는 환경 속에서 과학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고 사가타 교수를 동경했죠. 저도 (연구의) 시작은 아주 유치한 것부터 했습니다. 실로 돈키호테가→ 여행을 떠나는 듯한 시작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딪히고 저기에서 부딪히고 선배에게 혼나고 후배에게 무시당하고… 아니 후배한테 무시당하지는 않았나?(웃음) 이런 여러 경험을 하면서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충고를 한다면 한국에서는 물리학의 인기가 높지 않다고 들었는데 역시 젊은이들에게 꿈, 동경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꼭 백화점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이것을 위주로 하겠다'는 걸 시작으로 삼으십시오. 어느 정도 힘이 붙은 다음에는 저절로 그 주변에 영향력이 확대된다. 일점돌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가장 강한 점을 만들고 그걸 동경하는 많은 젊은이들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리=구희령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69)=일본 교토산업대 교수로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다. 그는 나고야대 물리학과 후배인 고바야시 마코토(小林誠·65) 일본 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KEK) 명예교수와 함께 1973년 ‘고바야시-마스카와 이론’을 내놓았다. 한 달 만에 A4용지 6쪽 분량으로 정리한 이 이론은 일본과 미국의 가속기 실험을 통해 2002년 증명됐다. 나고야대에서 박사까지 마쳤고 도쿄대 원자핵연구소 조교수, 교토대 기초물리학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현대의 물질관과 아인슈타인의 꿈』『지금 또 하나의 소립자론 입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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