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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억 년 이전엔 神이?” “신을 논증하기엔 데이터가 부족해”

글쓴이    관리자     날짜 2009-09-30

한승수 총리- 마스카와 교수, 우주탄생 대화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137억 년 그 이전엔 무엇이 있었죠? 신과 관련성이 있나요?” “신을 논증하기엔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한승수(73) 총리가 묻고 마스카와 교수가 답했다.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19층 국무총리 접견실. 중앙SUNDAY 초청으로 방한한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마스카와 도시히데(69·도쿄산업대) 교수가 한 총리를 예방하는 자리에서 신비롭고 예리한 지적 문답이 오갔다.

마스카와 교수는 우주의 성립을 이른바 ‘대칭성의 파괴’라는 이론으로 설명하고 최후의 소립자인 제5, 제6 쿼크(quark)의 발견을 예고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한 총리가 마스카와 교수를 만나기 두 시간 전 청와대에선 정운찬(63) 새 총리 후보자 지명 발표가 있었다. 한 총리는 영국 요크대 경제학 박사에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다. 경제학은 방법론적 엄밀함에 수학적 순수성이 더해져 ‘사회과학의 꽃’으로 불린다. 사회과학의 꽃이 ‘신의 학문(물리학)’에 의문을 계속 제기하자 마스카와 교수는 잠시 한숨을 쉬며 띄엄띄엄 답하기도 했다.

▶한 총리=(자리에 앉자마자) “2008년 노벨상 수상을 축하한다. 나는 물리학은 모르고 경제학은 조금 아는데 궁금한 것 몇 가지 여쭙고 싶다. 대칭성의 붕괴는 언제 일어났나. 그러니까 우주 형성이 언제인가.”

▶마스카와=“137억 년 전으로 보고 있다.”

▶한 총리=“우주 성립에 관한 마스카와·고바야시 이론과 경쟁하는 이론도 있는가.”

▶마스카와=“우리의 독자적인 쿼크 모델이 가장 좋다는 결론이 1979년 내려졌다. 그러나 모든 이론은 실험으로 관측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학이 아니다. 세계의 협력으로 가속기를 통해 제6 쿼크의 존재를 확인한 게 94년이다. 가속기의 에너지가 모자라 그때까지 여러 번 실패했다. 쿼크의 존재뿐 아니라 움직임도 확인해야 했다. 실험을 계속해 일본과 미국의 에너지그룹이 2002년 움직임을 확인했고, 우리 이론이 ‘맞았다’고 인정했다.”

▶한 총리=“새로운 가속기 덕분에 쿼크가 확인됐다는 얘긴가.”

▶마스카와=“그렇다.”

▶한 총리=“그렇다면 더 뛰어난 새 가속기가 나오면 당신의 이론이 바뀔 수 있나.”

▶마스카와=(사이) “싹 바뀌진 않는다. 새로운 발견이 나오면 더 깊은 이론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스웨덴 수상식에서도 말했지만 자연과학은 입증이 안 되면 과학이 아니다. 이를 위해 세계 20개국이 협력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재정 지원과 과학자의 협력을 받고 있어 감사하다.”

▶한 총리=“그러면 137억 년 전, 그 이전엔 무엇이 있었나.”
이 질문이 나오자 테이블 주변에 있던 총리의 보좌진과 마스카와 교수의 부인, 관계자들 사이에선 ‘아!’ 하는 탄성이 터졌다. 한 총리의 톤은 시종 낮았고, 표정 변화는 적었으며 속사포처럼 질문을 이어 갔다.

▶마스카와=(어깨를 들어올릴 정도로 한숨을 크게 쉰 뒤) “그에 대한 이론도 있다. 허수를 동원한 것도 있고, 여러 상상력이 발휘되고, 여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실증이 안 됐다.”

▶한 총리=“굉장히 불가해한 존재겠죠. 신과 관련 있을까요? …내가 가톨릭이라서.”(살짝 웃음)

▶마스카와=“신을 논증하기엔 데이터가 부족하다.”

▶한 총리=“과학으로 논증하기 어려운 게 신이다. 말씀 고마웠다.”

대화는 20분 정도였지만 깊이는 2시간 이상의 느낌이었다. 기자의 가슴에 신비를 탐색하는 충족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마스카와 교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일본의 정치인들은 배(腹)로 정치를 하는데 한국의 총리는 머리로 하시는 것 같다”고 기분 좋은 웃음을 웃었다.

◆안병만 교육과학부 장관 만찬=이튿날인 4일 롯데호텔, 안병만 교육과학부 장관이 마스카와 교수 부부를 초청해 만찬 간담회를 했다. 다음은 마스카와 교수의 인사말 요지.

“21세기 과학은 벼농사하는 민족이 잘할 수 있다. 과거의 과학이 훌륭한 연구자들이 혼자 하는 연구였다면 앞으론 연구가 대형화해 1000명씩 하는 집단연구로 돼 가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특히 한·중·일 3국은 집단적인 협력을 통해 벼농사를 해 왔다. 논에 물대기, 모내기, 추수 등 여러 사람이 흐트러짐 없이 일사불란하게 공동 작업을 해야 한다. 아시아 과학은 발전할 것이고, 한·중·일 3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마스카와 교수 부부는 5일 출국했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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