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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건배 제의에, 벌떡 일어서 “상 바라고 연구 말라”

글쓴이    관리자     날짜 2009-09-30

톡톡 튀는 ‘괴짜 과학자’ 마스카와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마스카와 교수(사진 오른쪽에서 둘째) 부부가 한국 도착 당일인 2일 한국물리학회(회장 이영백·사진 왼쪽에서 둘째) 회원 10여 명과 건배하고 있다. 이날 모임은 오후 10시까지 이어졌다. 신인섭 기자
2일 오후 1시45분 김포공항. 눈처럼 흰 머리, 1m50㎝를 넘을까 싶은 단신의 노신사가 입국장에 들어섰다. 일본인 여행객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노벨상 받으신 마스카와 박사님 아니신가요?” 곧 노신사는 사인과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였다. 인사동에서, 호텔에서, 명동에서…. 노신사가 가는 곳마다 일본인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69) 교토산업대 교수는 ‘스타 과학자’다. 그가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일본인은 13명에 이른다. 그가 특히 인기를 모은 것은 ‘괴짜’로 불릴 정도로 거침없는 행동 때문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노벨상 수상이 그다지 기쁘지 않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스웨덴에 노벨상을 받으러 가면서 처음 여권을 만들었고, 가와바타 야스나리(68년 노벨 문학상) 이후 40년 만에 처음으로 영어가 아닌 일본어로 노벨상 수상 강연을 하는 등 숱한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마스카와 교수는 중앙SUNDAY 초청으로 2~5일 한국을 방문했다. 3박4일 동안 지켜본 ‘스타 과학자’는 호기심과 열정, 유머와 신념으로 가득했다.

“연구하다 보니 노벨상 받게 돼”
4일 오후 6시40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주최로 만찬이 진행 중이었다. 이영백 한국물리학회장이 ‘한국 기초과학’을 외치자 참석자들이 ‘노벨상’이라고 답하며 건배했다. 갑자기 마스카와 교수가 벌떡 일어섰다. 연단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그를 모두 놀라서 쳐다봤다.

“노벨상을 위해 연구와 실험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노벨상을 주는 과학 분야도 아주 좁은데…. 수학만 해도 노벨상이 없죠. 그러면 노벨상 주는 분야만 (연구를) 할 것입니까. 과학 저변이 확대되고 시스템이 구축돼야 결과가 나오는 겁니다.”
이 자리에서 한 화학자가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 분야의 전망을 물었을 때도 마스카와 교수는 “성공할 가능성을 따지기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를 캐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답했다.

정명화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가 자신의 명함에 받은 마스카와 교수의 사인. 됫박(일본어로 마스)을 나타내는 기호를 ‘파이(φ)’로 응용했다.
‘노벨상을 목표로 하지 말라’는 것은 마스카와 교수가 끊임없이 강조한 메시지였다. 2일 저녁 한국물리학회 주최 만찬에서도 그랬다. 한 물리학자가 “솔직히 과학하는 사람들은 노벨상 받는 게 꿈이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나는 전혀 안 그랬다.

연구를 하다 보니 노벨상을 받는 것이지 노벨상을 받기 위해 연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 그도 이 자리에서 한국물리학회 산하 노벨상 특별위원회의 자문직은 수락했다. 마스카와 교수는 “오는 데 두 시간밖에 안 걸리는 가까운 나라니까 협력을 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즉석에서 ‘와인 뒤풀이’를 제안했을 때도 기꺼이 응했다. 한국과 일본의 과학 교류에 대한 이야기로 이날 뒤풀이는 오후 10시까지 이어졌다.

칠순을 바라보는 ‘호기심 소년’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마스카와 교수의 호기심은 수그러들 줄 몰랐다. 그는 “밤중에 자다가도 ‘아주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어’ 하고 혼자 실실 웃기도 한다”며 웃었다. “호기심이야말로 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도 했다.

3일 오전 마스카와 교수 부부가 덕수궁을 관람할 때다. 문화재 해설사가 궁궐의 아궁이와 온돌 시스템을 소개하자 마스카와 교수는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아궁이가 어떤 원리로 설계됐는지 등 10여 분 동안 질문을 쏟아 냈다. 해설사는 “과학자라더니… 외국 손님들을 많이 모셨지만 이런 분은 처음”이라고 했다. 남대문을 지날 땐 누가 태운 것인지, 범인은 잡혔는지, 복원은 언제 되는지 쉼 없이 물었다.

2일 한국물리학회의 만찬에서는 이름 표기 하나로도 이리저리 궁리하는 모습을 봤다. 마스카와 교수는 자신의 자리 앞에 놓인 이름표를 유심히 봤다. “Masukawa… 이건 제 여권 이름이네요. 논문에는 Maskawa라고 씁니다.” 여권 영문 표기법은 나라에서 정한 것이어서 어쩔 수 없지만 ‘수’로 발음되는 게 싫어 논문에는 그렇게 표기한다고 했다. 정명화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가 사인을 청했을 땐 ‘파이(φ)’ 기호를 이용해 ‘φ kawa’라고 썼다. 옛날 일본 소금가게에선 됫박(일본어로 마스)으로 팔면서

기호를 썼는데 이것이 파이 기호와 비슷하다는 데서 착안했다고 한다. 그는 “다른 학생들과 책이 뒤바뀌는 게 싫어 개발한 것”이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하기 싫은 일은 안 하는 사람
“이름이 도시히데(敏英)니까 영어를 민첩하게 잘해야 하는데….”
마스카와 교수가 이렇게 말을 꺼내면 모두가 웃는다. 그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도 “아이 캔 놋뜨 스피크 잉글리시”를 시작으로 일본어로 일관했다. “영어가 싫어서 (문과로 가지 않고) 과학자가 됐다”고 농담처럼 말할 정도다. 논문도 평생 일본어로 썼다. 노벨상을 받은 논문도 공동 수상자인 고바야시 마코토(小林誠·65) 일본 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KEK) 명예교수가 영어로 번역했다. 다만 영어로 된 최신 연구 자료를 읽는 일은 할 수 있다. 물리학 용어만큼은 영어로 다 알고 있다고 한다.

그는 달변이면서 농담을 즐긴다. 스스로 ‘만담가’라고 할 정도다. 악필이라서 자기 글씨를 해독하기 위해 책상 위에 커다란 돋보기를 뒀다, 건망증이 있는데 자신에게 불리한 것만 잊어버린다 등 틈만 나면 농담을 했다.

모든 강연은 즉석에서 원고 없이 한다. 이 때문에 가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하다.
부인 아키코(66) 여사가 들려준 에피소드다. 노벨상 수상 뒤 주스웨덴 일본대사관에서 축하파티가 열렸다. 대사관 측에서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 내용을 토대로 스웨덴어 통역용 원고를 준비해 놓았다. 그러나 마스카와 교수가 “같은 말을 또 할 수 없다”며 현장에서 새로운 내용으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냈다. 아키코 여사는 “통역이 얼마나 당황하던지…. 말썽꾸러기 할아버지”라며 살짝 눈을 흘겼다. 글쓰기를 워낙 싫어해 지금까지 나온 책은 다 구술했다고 한다. “(남편은) 싫은 일은 안 하는 사람이니까요.”

한국은 마스카와 교수의 생애 두 번째 해외 여행지다. 그는 “일본 문화의 반 이상은 한반도에서 건너왔다고 생각한다”며 국립중앙박물관에 가고 싶어 했다. 박물관에서 그는 일본 도자기의 뿌리가 된 한국 자기들을 보며 굉장히 즐거워했다. 인사동에서 “일본의 젓가락 문화와 다르다”고 감탄하며 은수저를 사기도 했다. 물김치·냉면 등 한식도 맛있게 먹었다. 그는 30년 넘게 교토에서 살고 있다. 한식 세계화 사업을 설명하자 “이 정도 수준이면 일본 식문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교토에서도 통할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나고야대 물리학과 후배인 고바야시 마코토 KEK 명예교수와 함께 1973년 ‘고바야시-마스카와 이론’을 내놓았다. 이 이론은 일본과 미국의 가속기 실험을 통해 2002년 증명됐다. 나고야대에서 박사까지 마쳤고 해외 학회에도 참석한 적이 없는 ‘순수 국내파’다. 교토대 기초물리학 연구소장을 지냈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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